ep1. 그때 그 노란 배들은 모두 어디로

· 출판사 출범 기록 프로젝트

그때 그 노란 배들은

모두 어디로

 

동학년이었던 6학년 그 해, 기억해요?

우리 다섯 쌤들이 이런저런 프로젝트 활동 많이 했잖아요. 교장쌤의 탐탁치 않은 눈초리를 애써 외면하며 말이에요. 백여 명의 아이들과 시청각실에 모여 스포츠리그전 종목을 정하고, 인권을 주제삼아 발표회랑 영화제도 열었죠. 일년 내내 학년 복도에는 무언가가 전시되거나, 의견을 묻는 설문이 붙었던 것을 기억해요.

4반 교실 옆의 동그란 공간에 세월호의 아픔을 기리며 추모공간을 열었던 한 주. 긴 시간을 들여 반 별로 커다란 협동작품을 완성하였죠. 덕분에 노란 풍선으로 들어올려진 배로 넓은 벽면이 가득찼어요.

‘단원고 언니 오빠들, 기억할게요’ ‘대통령은 감옥에 갔습니다만, 여러분을 다시 살릴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비극적인 사건에 공감의 마음을 담은 아이들의 글, 안전한 세상을 기리는 노란 종이배들은 복도 벤치와 바닥을 의미있는 공간으로 변화시켜 주었어요. 백 개가 넘는 노란 종이배들이 보기에도 참 예뻐서, 우리 선생님들도 한참을 사진 찍었잖아요. 그때 그 노란 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또 한 학급의 아이들을 만나요. 신실하게 돌아오는 3월처럼, 올해도 아이들을 신뢰롭게 가르치자고 마음먹어요. 잘 가르치는 일에 닿아 있는 관심.

‘수학 3단원을 먼저 할까?
 ‘국어 교과서의 제재글을 이 책으로 바꿔야겠어’
 ’아이들 관계를 프로젝트 수업으로 이어보자’

최근 몇 년 동안은 육아휴직과 육아시간을 사용하느라 버거웠죠. 그렇지만 어느 한 해도 대충 가르쳤던 적은 없었다는 것, 옆에서 보아온 S쌤은 알거라 기대해요.

이런 가르침의 열심과 결과는 물론 그 자체로 무척 의미있지요.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 또아리를 튼 물음이 있어요. 고민하며 열심을 내었던 수 백 시간의 수업, 상담하며 나누었던 세세하고 다채로운 결을 가진 이야기, 아이들이 쓰고 만들어 온 여러가지 결과물들은 이제 그 수명이 다 한걸까요. 2월이 되어 다음 학년으로 아이들을 올려보내면, 그것들은 이제 기억의 창고에 넣어두면 되는 일일까요. 이제는 가르쳤던 아이들의 얼굴도 가물가물한 나의 기억력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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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쌤의 눈에

나는 유난한 ‘휘부장님’이었을까요

 

고작 한 해 학년부장으로 함께 했다는 이유로 ‘휘부장님’이라 불렸던 두 번째 해. 경험없어 어설픈 학년부장에게 잊지 못할 한 해를 함께 건너온 동학년 쌤들과 학년이 끝났으니 ‘잘 가요’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나의 상황을 무릅쓰고 두 분에게 독서모임을 권했죠. 연수 기록에도 남지 않고, 지원받는 예산도 없었잖아요. 정말 순전하게 수업에 대하여 읽고, 쓰고, 대화하는 모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은 수업을 하자며 ‘깨어 있는 교사들의 모임’, <깨모임>이라는 낯간지러운 이름도 좋았어요.

 

내가 그동안 경험했던 수업에 대한 피드백이란 고작 ‘좋았어요’, ‘힘들었어요’ 혹은 ‘망했어요’ 정도? 깊이 닿지 못하는 대화는 두루뭉술한 표현만 주고 받을 뿐이었고, 결국 수업은 그 표현의 얄팍함만큼이나 단편적인 감정과 기억으로만 남았지요.

그래서 <깨모임>의 이름보다 더 매력적이었던 것은 ‘교사의 언어’가 담겨 있는 서로의 글이었어요.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내가 정말 궁금해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던가?’.
 ‘교사의 직업병이 되어 일상대화를 불편하고 껄끄럽게 만들기도 하는 평가성 발언!’

가르침의 어느 순간에 분명히 느꼈지만 이를 담을 표현을 알지 못했던 의문. 언뜻 수업의 중간에 발견했지만 바쁜 일과에 문장화할 겨를이 없었던 깨우침. 깨모임의 글에는 명징한 언어가 있었어요. 교실의 일상에서 이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는 이내 분주함에 가리워 사라지는 경험. 이를 붙잡아 선명하게 하는 교사의 언어 말이에요.

 

지금도 묻고 싶어요.

“S쌤은 그 때 뭘 믿고 <깨모임>에 참여 했어요?”

세 번째 담임을 맡아 학교 일과만으로도 정신없었을 S쌤에게 책 읽고 글쓰자며 제안한 나를 보며, 한 해 동안 쓴 우리의 글을 책으로 만들어 건네는 ‘휘부장님’을 보며, S쌤은 어떤 생각을 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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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남기면,

 

돌아보면 나는 어떠한 흔적을 남기고 싶어했던 것 같네요, 흔적을.
고민과 에너지를 쏟았던 수업에 대한 흔적을.
아이들과 주고받으며 서로를 자라게 한 이야기에 대한 흔적을.
함께 가르쳤던 동료 선생님들과 가르침의 의미를 발견한 흔적을 말이에요. 그리고 그 흔적을 차곡히 쌓고자 하는 욕구가 있나봐요.

그렇다고 흔적을 남기면 뭐가 될까 싶기도 해요. 남긴다고 누가 보기나 할까요? 세상에 널린 것이 학교인데, 수천 번의 수업이 매일같이 반복되는데 말이에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흔적일까 싶은거죠. 그런데 흔적을 남기면, 남겨져 쌓인 흔적은 어디로 어떻게 이어질까요?

경험이 기억의 저편으로 아스라이 사라지지 않고, 물성을 가져 흔적으로 남는 일을 생각하고 있어요. 생각을 단어와 문장으로 직조하고, 경험을 의미의 순서에 따라 기록하는 일. 그렇게 언어의 형태를 갖춘 가르침의 흔적을 종이에 얹고, 글의 고유함을 담을 겉과 속을 구성하는 일. 교사라는 존재의 집으로서의 흔적이 여기있다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전하는 일. 

출판. 그것은 출판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