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 알았었는데, 몰랐습니다.. 책 디자인

ep10. 알았었는데, 몰랐습니다.. 책 디자인

솔직히 말할게요, 꽤 자신이 있었어요. 여태껏 이러저러한 기회로 십여 권의 책을 디자인해 왔으니까요. 특히나 <수업이 되는 글쓰기>는 글쓰기 수업에 관한 책이니, 남다른 디자인보다는 실용서에 걸맞게 전형적으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러나 나의 예상은 와장창 무너지고 맙니다. 첫 번째 디자인 회의 시간부터요.

지금까지 제가 만든 책들은 디자이너의 주관을 선명하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작업이었어요. 그러나 이 책은 출판사의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책. 작은 부분까지 의견을 모아가며 디자인의 방향을 그려야 했지요. 거기에다 웬걸, <비사이드 북스>의 멤버들은 저마다 책을 보는 취향과 경험이 선명하고 다양하다는 것을… 이때는 정녕 알지 못했습니다.


가 좋아하는 표지와
람들이 좋아하는 표지

먼저 된 의논은 책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표지. 사전에 몇 가지 표지의 유형을 준비했어요. 일러스트 중심, 사진 중심, 타이포그래피 중심 등등. 예시를 들여다보며 다들 한 마디씩 내어놓습니다. “나는 일러스트가 많이 들어간 게 예쁘더라”, “타이포그래피를 크게 넣으면 세련되지 않겠어?”, “사진으로 절반을 채우는 표지는 별로야” 개인적인 선호가 담긴 의견들. 입맛이 다르듯 저마다의 취향에 정답이 어딨겠어요? 합의점이 없는 회의가 이어져, 질문을 바꾸어 봅니다.

💡 이 책의 주된 독자층의 눈에 띌 표지는 어떤 걸까요?

잠깐의 고민이 흐르고, 이전과는 다른 의견이 오고 가네요. “같은 주제의 책들 사이에서 눈에 띄었으면”, “표지를 보고 무슨 내용인지 감이 오면 좋겠어요” 이런 의견들이 모이면 디자인 방향을 정할 수 있지요. 어느 정도 회의가 진행되고 몇 가지 결론에 도달합니다.

  • 내용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 심플하고 깔끔한
  • 부제목이 부각되는
  • 글쓰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같은 방식으로 메인 컬러와 판형, 폰트의 대략적인 범위도 의논해요. 이 정도를 결정하면 표지 디자인의 초안을 만들 수 있지요.

  • 컬러는 연보라, 연두, 옅은 하늘색 계열로
  • 판형은 대중적인 크기로
  • 폰트는 명조체 계열로 하되 너무 클래식하진 않은 걸로

회의 내용으로 여러 종류의 1차 시안을 만들어 보기로 해요. 그중에 적절한 안을 고르고 완성도를 높여가기로.

지 작업은
반드시 교열교정이 끝난 뒤에

책 디자인이 시작되는 지금, 원고의 교정교열은 막바지 작업이 한창. 200여 쪽에 이르는 원고를 흡족한 수준에까지 이르도록 하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네요.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고 싶었던 부분에서 오타가 눈에 띕니다. 문장 사이에 쉼표를 넣었다 빼는 과정이 반복돼요. 이 정도면 매끄럽다고 만족했던 문맥인데, 다시 읽으면 어색하게 느껴지는 대목이 여기저기에서 손을 듭니다.

어서 내지 디자인을 진행하고 싶은 마음에, 완성된 부분부터 작업을 시작해요. 폰트와 문장 정렬을 맞추고 줄 간격을 조절합니다. 상황에 맞추어 다음 쪽으로 넘길 문장과 앞쪽으로 당겨 넣을 문장을 판단하지요.

몇 개의 장 작업을 마무리하였을 때, ‘띠딩~’ 편집자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합니다.

“원고를 보다 보니 수정할 부분이 보여서 몇 군데 살짝 손을 봤어요~”

헉… 이미 내지 디자인에 맞춰 완성해놓은 부분인데! 어쩔 수 없죠. 편집자가 수정한 부분을 찾아 눈을 부릅뜨고 모니터를 들여다봅니다. 몇 군데의 오타, 몇 개의 단어를 바꾸어 넣습니다. 단어의 글자 수가 다르니 다음 쪽으로 넘겼던 문장을 다시 앞쪽으로 당겨요. 어떤 장은 수정한 곳이 많아서 아예 처음부터 다시 작업을 시작합니다. 같은 작업을 두 번… 힘이 슬슬 빠지죠.

퀴즈. 이런 일이 한 번이었을까요? 아니죠, 그럴 리가! 반복되는 재작업을 경험하며, 결국 단톡방에 메시지를 올립니다.

💡 내지 디자인은 교열교정이 확.실.히. 끝난 뒤에 시작합니다! 디자인이 완성되고 나서 수정하려면 매~우! 번거로워요!

의논 끝에 전체 원고를 몇 등분하여 체크리스트를 만들기로 합니다. 잘게 나눈 각 부분의 리스트에 체크 표시가 되면 교열교정은 그만하기로. 그 부분부터 조금씩 디자인을 계속하지요.


글자는 화면이 아니라
종이에 찍히는 것

몇 개의 장 디자인이 완성되고 시험 삼아 프린트해서 내지를 확인해보기로 합니다. 실제로 인쇄했을 때의 글자 크기와 줄 간격이 주는 느낌을 보려고요. 그동안 모니터로만 다루던 책을 질감이 있는 출력물로 손에 쥐어볼 생각을 하니 기대되네요.

모두들 출력물을 들고 유심히 살펴봅니다. 페이지의 전체적인 균형과 조화를 느껴 봅니다. 한 문단을 이어 읽는 감각을 확인합니다. 글자와 줄의 간격이 답답하거나 허전하진 않은지 살펴봅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이대로 통과일까요? 그럴 리가요.

“음… 모니터로 볼 때보다 글자가 너무 큰데요?“

생각 외로 큰 차이가 나자 당황스럽네요. 비슷한 류의 책과 여러 차례 겹쳐가며 결정했는데 말이에요. 아무래도 지금까지의 작업물을 전반적으로 수정할 수밖에…

”지금보다 글자 크기는 줄이고, 줄 간격을 크게 두기로 해요.“

“제목 페이지의 위쪽 여백이 답답해요. 여백을 늘이고 글자를 줄이고.”

“인용 글을 더 얇은 서체로, 글자는 약간 회색?”

여기서도 쏟아지는 수정 요구들. 책 디자인은 창작보다 수정이 훨씬… 절레절레. 시행착오의 과정을 줄이기 위해 글자 크기, 줄 간격, 여백을 단계별로 조정한 서너 가지 안을 출력해 비교하기로 합니다.

Know-How
경험하여 얻는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책 만드는 과정을 스티디했었죠. 전반적인 절차와 단계의 선후를 알았어요. 그 지식은 지금 <비사이드 북스>의 첫 책을 만드는데 든든한 바탕이 되었다고 봐요.

하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실제로 겪으면서 얻는 디테일이 있네요! 교정교열과 디자인은 칼로 자르듯 구분할 수 없는 과정이라는. 책 디자인이란 창작은 20%에 수정이 80%는 된다는. 모니터와 출력물의 차이는 천양지차라는 경험적 지식 말이에요. 순서와 방법이 ‘어떻게 기능하게 하는지 아는’ Know-How는 경험에서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