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우여곡절 끝에 의미를 담은
ep4. 우여곡절 끝에 의미를 담은
ep4. 우여곡절 끝에 의미를 담은 로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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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채운 주제에
향하는 눈은
3번 출구가 제일 가까워요. 6호선 마포구청역에 내려 입구와 마주한 계단으로 내려가요. 홍제천을 따라 차들이 나란히 쉬고있는 골목길을 한 블록 걸어요. 그렇게 만나는 첫 번째 삼거리의 모서리 건물, 거기 2층이에요. 여느 작은 상가 건물이죠? 서점이 있을까 싶은. 네, 거기 맞아요.
작은 서점, <종이꽃>
여유가 있다면 오후 1시 쯤 방문하길 권해요. 갓 오픈하는 시간에 서점 문을 열면, “일찍 오셨네요, 주문은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오래 머물 여유를 얻을 수 있어요. 커피머신을 대우고 진열된 책을 정돈하는, 잘생긴 주인 청년이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은 덤으로.
여기는 커피 중에 ‘롱블랙’이 맛있어요. 아, 아메리카노에 비해 물이 절반이라 S쌤에게는 너무 진할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보통 “롱블랙 아이스로, 천천히 주셔도 괜찮아요”라고 음료를 부탁하고 책을 둘러봐요. 작은 서점이지만 창문을 중심에 두고 디귿자 모양으로 둘러진 서가에 오른 책들이 여럿이에요. 운영하는 분이 작가라고 들었어요. 제목도 겉표지도 고유한 취향의 책들을 큐레이션 해 놓았어요. 많은 책 사이에서 원하는 책을 고르기에는 대형 서점이 좋겠지만, 특유의 관점으로 선별한 컬렉션과 같은 작은 서점에는 큐레이터의 안목을 믿고 따라가는 재미가 있잖아요. 롱블랙 한 잔을 기다리며 서가에 나란한 책들을 둘러봅니다.
이상해요. 오늘 눈이 가는 곳은 출판사의 로고에요. 책 제목도 작가 이름도 아닌, 출판사의 로고. 책에는 보통 두 군데에 출판사 로고가 있잖아요. 앞표지의 아래쪽에 하나, 책 등의 아래쪽에 또 하나.
‘이 출판사는 한글명을 로고로 쓰는구나’‘이 책은 로고가 선명하니 잘 보이는데?’
’이 로고는 출판사 이름이랑 같이 넣으니 너무 작아서 알아보기 힘들어’
책마다 새겨진 출판사 로고들을 한참 동안 들여다봅니다. 이럴만도 하지요. 요즘 출판사의 로고를 구상하고 있거든요. 전에 얘기했던 <비사이드 북스 beside books> 기억하죠? 옆 반 선생님이 만들었다는 보드게임 매뉴얼을 이야기하면서, 뜻이 맞는 분들과 교사들을 위한 출판사를 시작했다고 말했잖아요. 책이 되는 과정에서 선생님의 곁을 지키는 출판사, 곁에 있는 출판사 <비사이드 북스>. 출판사 이름에 맞는 로고가 무엇일지, 요즘 그 생각이 많아요. 그러니 서점에 와도 책보다 로고에 더 눈이 갈 수밖에.
이렇게 저렇게
주변에 있는 방법으로
로고를 만들기 위해 처음 찾은 앱은 에요. 원격 수업으로 유명해진 <미리캔버스>와 비슷한 서비스인데, 로고를 위한 디자인 샘플이 많아요. 사용 방법도 간단하고, 로고뿐만 아니라 PPT 레이아웃, 포스터 샘플도 다양해서 아이들과 수업 때 사용하기도 좋더라고요. 재직증명서를 보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교육 인증을 받으면 기능 제한이 없어요. <미리캔버스>보다 디자인이 전반적으로 산뜻하고 깔끔해서, 취향이 맞는다면 눈이 번쩍 뜨일 샘플이 여럿이죠.
‘오, 이 로고 멋진데? 깔끔하고 좋네!’ 색과 아이콘을 한참 동안 바꿔보며 <비사이드 북스> 로고의 초안을 만들었어요. 그리고는 그림파일로 변환. 어라? 이때가 되어서야 눈에 띄는 문구가 있었어요. ‘상업용으로 사.용.금.지.’ 출판사 로고로 쓰기 위해서는 상업용 라이센스가 필요하잖아요. 허무했어요. 열심히 만들었지만 저작권 때문에 실패.
아무래도 저작권에 걸려서 디자인 샘플을 활용하는 방법은 접어야겠어요. 어설프더라도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일단 레퍼런스를 찾습니다. 이런 경우에 빛을 발하는 서비스. ‘이미지 검색의 네이버’라고 설명하면 이해가 쉬울 거예요. ‘book’과 ‘logo’로 검색하니 국내외 자료가 수없이 나와요. 완성작들이라 그런지, 앞서 보았던 샘플 디자인과는 수준이 다르네요.
적절한 작품들을 보며 로고를 보는 안목을 기릅니다. ‘테두리를 두르니 정돈된 느낌이 나는구나’, ‘한글과 영어 타이포그래피가 주는 인상이 사뭇 다르네’, ‘색이 너무 현란하면 표지의 제목이 오히려 묻히겠는데?’ 역시 경험이 쌓일수록 지향점이 뚜렷해지는 법. 한참 동안 레퍼런스를 보면서 몇 가지 원칙을 정해봅니다.
첫 번째 원칙, 영어 이니셜로 표현하자.
두 번째 원칙, 이니셜의 배치에 의미를 두자.
세 번째 원칙, 얇은 원형 테두리로 마감하자.
막막한 마음을 몇 가지 기준으로 가라앉히고 학교의 스마트 교실로 걸음을 옮깁니다. 우리 학교에 원격수업 장비로 아이패드랑 애플펜슬을 샀잖아요. 태블릿과 더불어 펜슬이 있으니, 확실히 직관적이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더라고요. 아이들과 스마트 기기를 가지고 미술 수업을 할 때 몇 번 써 봤던 경험으로 앱을 열어봅니다. 라는 드로잉 앱으로 로고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럴 때 유용하게 쓰네요.
머릿속에 대략의 구상이 있으니 그리 어렵지는 않네요. 로고 자체가 복잡한 창작물은 아니잖아요. 화면의 가운데에 <비사이드 북스>의 이니셜 B를 배치해 봅니다. 대문자를 소문자로 바꿔도 보고, 하나 위에 다른 B를 겹쳐 놓아도 보고. 어떤 구성이 출판사를 여는 의미를 담기에 적절한지 이리저리 해보는 거에요. 테두리를 동그랗게 두르니 생각과는 다르게 답답해 보이네요. 두께를 얇게 줄여봅니다. 그래도 여의치 않아 색깔을 흐릿하게. 원 안이 여유롭게 보였으면 하여 타원으로 바꿔보기도. 이렇게저렇게 여러가지 시도를 해봐요.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아마추어의 가벼운 마음으로.
곁에 있는 출판사,
<비사이드 북스>다운 로고란
S쌤에게 먼저 살짝 보여줄게요. 로고의 느낌이 어떤지, 베타 테스터가 되어주세요. 처음 만들어보는 거니 어설픈 걸 감안해주시길.

우여곡절을 겪으며 로고를 완성했어요. 출판사의 이름과 더불어 로고가 나오니 꽤나 멋지다는 생각에, 안으로 굽는 팔로 <비사이드 북스>를 토닥여 봅니다. 출판사다운 첫 단추를 잘 꿰지 않았나요. 한 편으로 세상의 많은 독립출판사가 새삼 존경스러워요. 로고 하나에도 들이는 고민이 이렇게나 컸겠구나 싶네요.
서점 <종이꽃>의 서가로 되돌아가요. 우리 <비사이드 북스>의 출판 목록을 하나의 서가로 상상해봅니다. 어떤 책들이 모이게 될까요. 로고보다 중요한 건 책일 테지요. 거기에 담긴 교사들의 이야기겠지요. 로고에 담긴 의미를 이루는 <비사이드 북스>가 되길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