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이제 어엿한 정식 출판사로: 출판사 등록

ep5. 이제 어엿한 정식 출판사로: 출판사 신고

관공서 울렁증을 극복하라!

출판사 신고 미션

막막한 기억이 되살아났어요. 작년 이맘때였던가요, 전기차 번호판을 발급받으러 셀프 등록을 시도했어요. 등록하는 방법을 구글링한 자신감으로 구청을 방문했죠. 별관 1층 자동차등록과의 문을 여는 그 순간! ‘그냥 딜러에게 맡길 걸…’ 나는 후회했어요. 민원실을 꽉 채운 사람들, 종류를 셀 수 없는 서류 양식들, 들러야 하는 대여섯 군데의 창구들… 등록 대행비 아껴보겠다고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이 일이 얼마나 낯설고 복잡한 과업인지 미처 몰랐지요. 몇 장의 서류를 빼곡히 채우고, 물어물어 각종 세금을 납부하고, 직원에게 서류를 ‘첨삭’ 당해 잘못 작성한 부분을 고치고, 다시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 접수하기를 몇 차례. 아마도 S쌤이 학교 근처에 집을 구할 때보다 몇 배는 더 복잡한 절차였으리라 짐작해주세요. ‘혹시 학교를 방문하는 학부모들도 이런 심정이었을까’ 짐작하며 간신히 자동차번호판을 받았지요. 무슨 이유로 그때의 기억이 났냐구요?

출.판.사.신.고.

피할 수 없는, 한 번은 겪어야 할 미션을 치를 시점이 왔기 때문이에요. 책이 되는 과정에서 선생님들의 곁을 지키는 출판사 <비사이드 북스beside books>. 범접하기 어려운 베스트셀러 작가보다는, 아이들과 더불어 배우고 가르치는 보통의 교사들의 책을 만들겠다는 호기로움을 실행에 옮겼죠.

하지만 아직 <비사이드 북스>는 단지 우리끼리 의기투합한 출판사일 뿐. 사적인 모임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인을 받아야 할 테죠. 출판사 신고라는 행정 절차를 시작할 때가 된 거예요. 그래야 심오한 의미를 담은, 출판사의 멋들어진(!) 이름을 지킬 수 있는 데다, 책의 ‘발행자번호(ISBN)’를 발급받을 수도 있거든요. 작년 자동차등록으로 얻은 관공서 울렁증을 이제는 극복할 수 있을까요. 두둥.

판사에는
무공간이 필요하다오

막막할 때마다 큰 도움을 주시는 우리의 구 선생, 구글링을 시작했어요. 요즘은 1인 출판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은 터라 정보를 얻는 게 어렵진 않았어요.

“오호라 생각보다 간단하네, 출판사 신고서와 비용만 내면 끝이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걸맞은 한국의 훌륭한 행정력은 작성해야할 서류를 구청 홈페이지에 올려두었네요. 공무원 만세. 서류 양식을 열어봅니다. 기재할 칸이 그리 많지 않아요. ‘대표자’란엔 인적 사항을 쓰면 되고, 몇 가지 소소한 내용을 쓰는 칸이 이어집니다. 휴, 마음이 가벼워지네요. 하지만 방심은 금물,

응? 사업체 소재지?”

두둥. 출판사도 엄연한 사업이니만큼, 물리적 공간이 필요하다는 사실. 책 만들 생각만 했는데 이 일을 어찌할꼬. 동업자들과 의논 끝에 작은 소호사무실을 임대하기로 합니다.

부랴부랴 여기저기 사무실을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위치도 크기도 천차만별. 더구나 사무실의 위치한 관할 지역에 따라 내야 할 세금도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고려할 점이 많네요. 가까스로 적절한 공간을 찾아 문의했어요. 현장을 방문하고 1년 치 임대료를 지불했죠. 이로써 <비사이드 북스>가 물리적으로 머물 곳, 사무실이 생겼네요.

허무하도록 간단해서 다행인
출판사 신고서

이제 출판사를 신고할 준비를 마쳤어요. 사무실을 얻는 지역 구청의 문을 열었습니다. 관공서 특유의 분위기로 인해 살짝 손바닥에 땀이 났지만, 인터넷 검색으로 갖춰놓은 예습 지식에 힘입어 안내 직원에게 물었어요.

“문화체육부가 어디에요?”

“여긴 문화체육부라는 곳은 없어요. 혹시.. 문화공보과를 찾으세요?”

“아… 아마 거기인 것 같아요…”

여윽시 만만치가 않습니다. 미로같은 계단을 거쳐 담당 부서에 도착했어요. 민원인 테이블에서 익숙한 서류 양식을 발견합니다.

‘출판사신고서’

낯익은 양식에 마음이 평안을 찾아요. 준비해 간 신분증, 등본과 서무실의 임대차계약서를 꺼내어 놓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꼼꼼히 눌러 서류를 작성해요. 이렇게 빨리 채울 줄 알았으면 번호표를 미리 뽑을걸. 대기 번호 6번이 적힌 표를 들고 순서를 기다립니다. 띵동! 내 차례. 창구의 직원은 아크릴 가림판에 안내된 구비 서류 목록을 펜으로 두드립니다. 다행히 가져온 서류들과 같아요. 건네받은 직원은 몇 가지 항목을 눈으로 훑고, 타다닥타다닥 컴퓨터에 입력하고, 두어 곳에 직인을 탕! 탕!

“접수되셨어요. 2, 3일 뒤에 메세지 받으시면 등록증 받으러 다시 오세요. 그 전에 소재지에 담당 직원이 실사 나갈 거에요.”

“끝이에요?”

“네. 다음 분. (딩동!)”

30초 쯤 걸린 것 같아요. 끝이라네요. 허무할 정도로 간단해서, 차라리 다행인거 맞겠죠?


비사드 북스
세상의 인정을 얻다

며칠 뒤 휴대폰 메시지가 도착했어요. 출판사 등록이 다 되었대요. 얏호! 아직 책 한 권도 내지 않은 출판사 주제에, 큰일을 이뤄낸 듯한 뿌듯함을 품고 구청으로 향합니다. 이제는 익숙한 문화공보과에서 번호표를 뽑고, 딩동! 면허등록비를 냈더니,

“출판사 신고확인증을 받아가세요.”

감개무량합니다! 이제 <비사이드 북스>가 출판계의 정식 일원이 되었군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사적인 모임이 아니라, 어엿한 출판사로 존재하기 시작했으니까요. ‘고작 종이 한 장일 뿐인 신고확인증인데 뭐’ 생각하며 마음을 가라앉혀 보지만… 사실은 입꼬리를 귀에 걸고 사람들을 향해 외치고 싶어요.

“<비사이드 북스>는 이제 어엿한 출판사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