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이 원고를 첫 책으로 삼아 주세요
—
원고는 크나
작아지는 우리
“이 원고를 <비사이드 북스>의 첫 책으로 삼아 주세요.”
첫 번째 원고라니! 생각보다 일찍 이 순간이 왔어요. 출판사를 시작하면서부터 그려왔던. 우리의 첫 책은 무엇이 될까 고대해왔던 순간.
글을 보내오신 류창기 선생님은 글쓰기 지도 분야의 전문가에요. 자신부터 가르치면서 알게 된 걸 글로 쓰고 공유하는 실천을 이어오고 있지요. 그런 이유로 <삶이 있는 수업>, <초등학교 때 꼭 알아야 할 국어 100, 지리 100>, <코로나 이후 학교의 미래>와 같은 여러 책을 써 왔고요. 이런 분이 우리 출판사에 원고를 맡기시다니. 저자가 가진 신뢰도를 생각하면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 할 판!
원고 자체의 가치는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오랫동안 이어온 글쓰기 수업의 경험이 장마다 베여있어요. 삶과 배움을 노련하게 연결하는 수업의 묘미가 엿보입니다. 챕터의 구성이며 글의 짜임새도 완성형에 가까운 상태. 우리가 받은 원고 그대로 이미 훌륭해요.
오히려 걱정의 대상은 우리. 첫 원고를 받아든 우리는, 쫄보가 되고 말았어요.
”신생 출판사에 흔쾌히 원고를 맡기셨으니, 잘 만들어 드려야 할 텐데…” ”<비사이드 북스>에서 책을 내서 오히려 원고에 누가 되는건 아니겠지?”
우리가 이 원고를 어엿한 책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조심스러운 마음을 더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어요. 책을 만드는 과정. 이 책을 출판하는 과정이 <비사이드 북스>가 앞으로 작업하는 기준이 될 테니까 말이에요. 마치 S쌤이 학기 초에 학급세우기를 하는 심정과 비슷할까요? 원고를 찾고 선정하는 기준, 편집과 교열교정을 보는 정도, 표지와 내지의 디자인 스타일, 인쇄하는 경로, 책을 알리고 파는 방식. 첫 원고를 다루면서 수많은 결정을 하겠지요. 이 모든 에너지와 시간의 향방이 우리 출판사가 일하는 표준이 되지 않겠어요?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몰려와요.
시장을 살펴보다1:
상대를 알면 적어도 상대만큼은
두근거리는 마음에 포개진 막막함을 안고, 작업의 고삐를 쥐어 봅니다.
”일단 서점에 글쓰기 관련한 책에 대해 시장조사를 해볼까요?” ”작가가 이 책으로 글쓰기 강의도 하실 분이니, 요즘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도 살펴봐요.”
인터넷 서점 <알라딘>으로 향합니다. 여기는 책 전반부의 열 페이지 가까이 미리보기를 제공해요. 덕분에 책의 실제 내용과 전반적인 인상을 알 수 있어요. 수많은 책 중 무엇을 살펴보아야 할까요? 일단 ‘글쓰기’라는 키워드로 검색. 헉, 국내 도서만 해도 3,200여 권이 검색되는군요. 이 많은 책을 다 볼 수는 없어요. 검색 화면 왼편의 ‘분야’를 봐요. 오호, 검색된 대부분의 책은 특정 분야에 몰려 있네요. ‘좋은 부모-글쓰기’ 분야와 ‘사회과학-교육학’ 분야에요.
첫 번째 분야를 클릭, 검색되는 목록을 빠르게 훑어봅니다. <문해력 수업>, <내 아이를 위한 30일 인문학 글쓰기의 기적>, <초등 영어 글쓰기 로드맵>, <공부머리 독서법>, <그림책 페어런팅> 눈에 쏙 들어오는 단어의 제목, 학부모를 솔깃하게 하는 제목이 인상적이네요.
적당한 책을 클릭하여 목차도 살펴봐요. ‘프롤로그: 아이의 모든 인생은 글쓰기로 결정된다’, ‘1장: 읽는 방식을 바꿔야 ‘쓰는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아이의 내면을 탄탄하게 다지는 인문학 글쓰기의 기적’ 또 한 권의 책을 살핍니다. 이렇게 몇 권을 훑고 나니 목차의 문장들이 눈에 익기 시작하네요. 보통의 책들이 도입글, 서너 개의 장과 그 아래 열 몇 개의 글 목록 그리고 마침글로 구성되어 있어요.
우리의 책과 직접 경쟁을 벌일 선배님 책(!)도 찾아봅니다. ‘사회과학-교육학 분야’에서 판매지수 상위에 위치한 책들이죠. 1순위부터 180순위까지 찾아볼 수 있네요. 1위는 <말글 공부> 제목이 간단하면서도 선명합니다. 2위인 <글똥누기> 위트있는 제목이죠? 3위는 <이오덕의 글쓰기> 글쓰기 분야의 ‘레전설’인 이오덕 선생님의 책. 모두 대단하고 부러운 책들이에요. 우리의 책을 이 순위 사이 어딘가에서 볼 수 있을까요? 아직 세상에 없는 책이지만서도, 경쟁심을 가지고 지금 1, 2위에 오른 책들을 괜히 한번 째려봅니다.
시장을 살펴보다2:
먼저된 것에서 힌트를 발견하다
이번엔 글쓰기 연수 차례입니다.
매년 연수 시간을 채우려 접속하던 온라인 연수 사이트를 떠올렸어요. 처음으로 들어간 <티스쿨>에서 글쓰기에 관한 연수가 여럿 보여요. 오, 내가 들었던 <백승권 작가의 딱풀 글쓰기> 연수도 있네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으로 유명한 <강원국의 글쓰기>도 인기가 높아요. 목록을 훑으며 발견한 연수의 종류는 크게 둘이에요. 하나는 글 쓰려는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연수, 다른 하나는 학생 지도를 목적으로 하는 연수. 우리의 책에도 이처럼 명확한 방향이 있어야겠어요.
이번엔 <에듀니티>로 접속해봅니다. <우리 말과 글을 담은 7인 7색 국어 수업 이야기>라는 연수가 눈에 띄어요. 차시별 구성을 살펴요. <모듈 1. 이야기, 학교를 바꾸다>, <모듈 2. 아이들 삶을 담은 시와 노래>로 이어지는 연수에요. 글쓰기 전반에 대한 이해에서 실제 수업 방법으로 내용이 이어져요. 원리에 대한 개괄과 함께 구체적인 지도 방법을 아우르는 구성이라면 균형이 있겠다는 힌트를 발견합니다.
팔리는 책이 아닌
살리는 책
서점가의 쟁쟁한 글쓰기 책들, 책을 바탕으로 운영하는 안정적인 연수들을 보니 마음 진지해지네요. <비사이드 북스>가 이 원고를 책으로 잘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만든 책은 얼마나 많은 독자에게 닿을까요?
우리의 첫 번째 원고를 앞에 두고, 출판사를 시작했던 의미를 되새깁니다. 보통의 교사들이 가진 작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공유하길 바랐지요. 자극적인 주제, 굉장한 내용을 가진 책은 이미 세상에 많잖아요. 이 출판사의 관심은 ‘팔리는 책’을 만들기보다, 사람을 ‘살리는 책’에 있어요. 가르치고 배우는 이들의 삶을 위하는 책 말이에요. 일찌감치 베스트셀러는 목적에 없었다는 다짐을 굳게 합니다. (원고를 맡기신 류창기 선생님, 죄송합니다. 우리는 이런 출판사입니다…)
글쓰기 수업으로 아이들의 글에 빛을 더하고 싶은 선생님의 곁을 지키는 책이라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글쓰기로 삶을 건강하게 가꾸어 나가는 아이들을 돕는 책이라면. 그렇다면 <비사이드 북스>가 만드는 첫 책으로 부족함이 없겠어요.
글이 담고 있는 소중한 이야기가 빛을 발하도록, 책이 되도록 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