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 안개 짙은 숲을 산책하는 듯, 교정 교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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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도 가공을
거치는 법
가까스로 ‘책 제목 짓기’의 미궁에서 벗어난 비사이드 북스. <수업이 되는 글쓰기>라는, (적어도 우리에게는!) 절묘하고 매력적인 제목에 뿌듯해하며 원고를 들여다봅니다. 분명 훌륭한 원고이지만, ‘장 제목에 통일성이 있으면 좋겠는데…’와 같은 아쉬운 점이 보여요. S쌤이 공문을 기안할 때도 몇 번씩 문장을 수정하잖아요? 자고로 아름다운 보석도 가공을 거치는 법! 이제 교정 교열을 볼 순서겠지요. 원고의 수정할 점을 의논하면서 깨달아요.
‘이건 여럿이서 상의할 일이 아니구나! 담당자를 세워 교정 교열을 보는 게 좋겠어.’
그리하여 우리는 편집자를 세워 원고의 교정 교열을 시작합니다.
차례 수정이란
일종의 퍼즐 맞추기
멋지게 다듬으리라 불타오르는 의욕을 누르고, 관조하는 눈으로 차례를 찬찬히 훑어봅니다. 모두 3부로 나눠어 있군요. 한 부 안에는 8장 정도의 글이 있고요. 원고의 전반적인 흐름이 어렴풋이 그려지네요.
💡차례: 각 부마다 담긴 내용이 선명히 구별되게 순서를 조정하자
내용과 흐름이 매끄러워요. 그리고 12장은 앞뒤의 내용 사이에 어울리지 않게 끼어있는 느낌인데… 앞 장 속에 포함할지 다른 위치로 옮길지 좀 더 고민을 해봐야겠어요.
2부는 실제적인 글쓰기 수업 방법을 안내하는 내용이에요. 장 제목마다 앞에 ‘글쓰기 수업 비결’을 붙이고 1에서 6까지 번호를 두면 명확하겠어요. 대신 2부 안에 여덟 장 분량의 균형을 맞추려고, 다른 두 장을 2부에 옮기기로 해요.
💡차례: 글의 내용을 직관적으로 알도록 각 장의 제목을 다듬어야겠어
‘~하기’라는 명사형 제목이 좋을까, ‘~하라’는 동사형 제목이 좋을까요? 하나의 형태로 하면 통일성이 있을까 싶어 바꾸어 보아요. 하지만 예상외로 인위적이고 경직된 느낌이 나네요. 굳이 모두 통일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대신 제목 안의 관념적인 어휘를 구체적으로 바꾸는 방향을 세워요. 6장인 <질문을 질문하다>를 <‘고쳐쓰기 틀’로 질문 연습하기>로 바꾸니 내용을 파악하기 좋네요. 제목의 형태에 얽매이지 말고, 글쓰기 실용서에 맞게 직관적인 내용 이해를 돕는 것이 핵심!
때로는 홀로
때로는 함께
본격적으로 원고의 본문을 들여다봅니다. 멋지게 손보리라 열의는 가득하지만 한 번 읽고서는 무엇을 어떻게 고칠지 모르겠네요. 시간을 들여 다시 곰곰이 맥락을 읽어요. 문장을 읽는 맛과 호흡을 느끼며 또다시 읽어요. 이렇게 조금씩 어색한 대목과 더 좋은 표현을 찾아갑니다.
💡본문: 표현을 읽기 좋게 고쳐가요
1부의 소개 문단 안에 있는 문장들의 주어가 모두 ‘아이들’이네요. 문단의 내용은 적절하지만 반복되는 단어를 다양하게 고쳐 두어요. 3부의 소개 문단에도 ‘글쓰기’라는 단어가 너무 많아요. 글쓰기 책의 핵심 단어이지만 이 문단도 반복되지 않도록 고칩니다.
글 여기저기에 따옴표를 쓴 대목이 많아요. 대화 형태의 서술이 현장감을 느끼기에 좋지만 지금 원고에는 지나친 감이 있어요. 어느 정도로 넣어야 할까요? 고민스럽네요. 원고 전반을 빠르게 훑으며 대화문의 빈도를 파악해요. 중간중간의 대화를 설명으로 바꾸어 둡니다.
틀린 문장은 아니지만, 읽는 맛을 더하려 문장을 바꾸기도 해요. 일일이 접속사를 쓰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문장 사이를 손보아 갑니다.
(원래 문장) ‘…솜씨가 부족해서인지, 생각과 글의 온도 차를 막을 순 없어요.’ (수정 문장) ‘…솜씨가 부족해서인지 알 수 없지만 생각과 글의 온도 차는 상당합니다.’
💡본문: 저자와 의논하며 바꾸어갈 내용이 있어요
원고의 3부에 이르러 난관이 발생합니다. 실용서인 점을 고려할 때 3부의 내용이 전반적으로 어렵지 않나 싶어요. 여기는 어떻게 할지 아무래도 저자와 상의를 해야겠어요. 전반적인 수정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후에도 저자와 함께 상의할 부분이 이어집니다. 2장에 이르러 학생의 글을 첨삭해주는 부분이 많아요. 몇 대목을 읽다 보니 지도하기 전 학생의 글과 전후를 비교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첨삭 전과 후의 글을 나란히 싣는 구성을 저자에게 제안해보기로 합니다.
원고의 가장 앞에 ‘들어가는 글’을 추가하면 좋겠어요. 이 글이 탄생한 배경, 기초가 되었던 <목요인강>이라는 글쓰기 연수, 각 부의 구성 방식, 글쓰기를 가르칠 독자의 필요에 따라 눈여겨 읽을 혹은 건너뛸 부분을 제안하는 글을 떠올렸지요. 독자가 책의 전반을 이해하는 시작점이 될 것 같거든요.
안개 짙은 숲,
그 숲을 산책하는 듯
교열 교정의 과정을 글로 보이자니 간단하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S쌤에게 다 말하지 못한 지난한 과정이 많았어요. 무엇을 어떻게 손 델지 알고자 몇 번씩 반복해서 읽었던 시간들. 수정을 계속하다 보니 이전에 수정한 대목이 적절했는지 다시 돌아가기를 자꾸만 되풀이하게 되더라고요. 저자와의 소통도 적지 않은 몫. 때로는 나의 수정 방향을 설득하고, 때로는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여 내 것으로 삼는 유연함이 필요해요.
무엇보다 어려운 점은, 이 작업이 수학처럼 공식과 정답이 분명한 게 아니라는데 있지요. 책을 선택한 이유가 저마다 다를 여러 독자들. 그들을 모아 하나의 인격체로 상정하여 그 분에게 더 잘 읽히도록 원고를 바꾸어나가는 크고 작은 선택. 과연 유효할까요? 아마도 책을 완성하기 전에는 결코 확인할 수 없겠지요. 마치 ‘안개 짙은 숲’에서 정답을 필사적으로 찾아 헤매는 형국입니다.
하지만 편집자만이 소유하는 유익함이 또한 있어요. 책의 내용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 편집자는 세상에서 이 책을 가장 많이, 가장 깊게 읽는 사람이지 않을까요? 원고의 이곳저곳을 수없이 읽으면서, 저자가 그렇게 쓴 의도를 파악하면서, 더 좋은 표현과 구성을 찾으면서 읽잖아요. 대충 훑는 읽기로는 오타 하나도 찾기 어려우니까요. 교열 교정하면서 글쓰기 지도에 자신감이 붙는 느낌. 생각해보면 책이 주는 유익을 가장 먼저 누리는 셈이지요. 그러니 이 작업은 안개가 짙긴 하지만, <수업이 되는 글쓰기>라는 깊은 숲을 찬찬히 ‘산책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